팔자눈썹을 하고 가게에 들어오는 지민에게 컵을 닦고 있던 태형이 눈인사를 건넸다. 왜 또 죽상이야- 라는 입매로. “무슨일인데 얼굴이 그래” “내 얼굴은 언제나 멋있어” “아닌데 오늘은 구겨졌는데?” 찌릿 노려보는 지민에게 콧방귀도 뀌지 않는 태형은 마지막 컵을 내려놓은 뒤 바에 엎드려 있는 지민의 옆에 팔꿈치를 짚고 허리를 숙였다. “아니이 호석이 형이랑...
[지금 갈게] 라는 문자를 남긴 채 급히 택시를 타고 보니 정국의 집이 어디인지 몰랐다.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가게 앞에서 기다릴게요] 답을 보고 떨리는 음성으로 주소를 읊으며 혹여나 더 기다릴까 서둘러 가달라 재촉했다. 택시의 속력이 오르는 속도는 내 마음이 오르는 속도보다도 한참 느려 답답했다. 익숙한 인영이 택시가 멈춤과 동시에 자리에...
손을 꼭 붙든 채 잠들어 있는 윤기를 내려다보았다. 슬쩍 손가락을 움직여 조심스레 빠져나와도 다시 붙잡지 않는 걸 보니 이제야 깊은 잠에 빠진 듯 했다. 약을 사러 나간다 해도 싫다, 병원에 가자고 해도 싫다 해서 결국 집에 있는 비상약을 먹였다. 평소보다 높은 온도를 나는 이제 맞춰 줄 수 없게 되어 버렸는데 꼭 형은 그동안 쌓아놨던 감정을 터트리듯 거세...
- 그 뒷이야기 입니다. “이야- 아주 나를 죽은 사람 만드네. 이게.” 교실 앞문을 열자 옆 반 수업이었던 지민 형이 창틀에 삐딱하게 기대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학창시절, 자주 머리를 맞았던 당구대를 들고. 옆구리에 끼고 있던 수학책을 빼내어 문학책과 겹쳐 잡았다. 빈 손으로 슬쩍 옆에 있는 손을 건드니 피식하고 웃는다. 하지마 인마- 여전히 ...
“선생님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맑은 청록색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은 나의 첫사랑 이야기를 항상 궁금해 한다. 가슴 한 켠에 조용히 쌓아두었던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던 것은 오늘 날씨가 그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 “야, 박지민 그만 자.” 그를 깨운 건 흔하디 흔 한 일주일에 두, 세 번 있는 역사시간이었다. 일 년을 꿇고 입학 한 박지민은 수업 시간...
“저기요” 전정국이 또 그렇게 부른다. 이유는 내가 얼마 전에 태형이네서 뻗었거든. 뽈록한 정국의 엉덩이를 주물렀는데 불퉁한 목소리와는 달리 손길을 피하지 않는다. 뻔뻔해졌어 전정국. 예전에는 손만 대도 귀부터 벌게지더니만. 이것도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귀여워서 지민은 손가락에 힘을 주자 둔근에 힘을 빡 주는 정국탓에 꺄르르 숨 넘어가듯 웃었다. 말과 ...
잠들어 있는 지민의 둥근 이마를 쓸어내렸다. 감추고 싶은 걱정, 불안이 타인에 의해 까발려졌다. 그것도 가장 경계하던 사람에게. 나올 준비도 못한채 벗겨진 속내를 추스리는 건 고되고 쓰리다. 말을 못한다는 것. 남몰래 지민의 진료를 예약하고 취소하기를 반복할만큼 걱정스러웠지만 한편으론 그 이유가 나여서 좋기도 했다. 네 안에 깊은 무의식 속 여전히 잠겨있는...
의도적으로 서로를 피한 지 삼일 째다. 아니 거의 일방적으로 지민이 윤기를 피했지. 눈치가 좋은 윤기는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 지민에게 대화를 핑계 삼아 이 상황을 풀어나갈 구실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냥 식탁에 아침밥을 차려놓고 퇴근하면 반찬을 만들기만 할 뿐. 본인은 잘 챙겨먹지도 못하면서 혹시나 지민이 굶을까. 그래서 지민은 밥을 밀어 넣다 중간 중...
“왜 또 깼어” 어깨를 끌어안고 자는 덕에 조금만 움찔해도 금방 눈을 뜬다. 피곤이 가득해 탁해진 음성이 지민을 알 수없는 죄책감에 빠지게 해 그저 고개만 저었다. 평소에도 가뜩이나 얼마 못 자는 잠, 깊게라도 자라고 윤기가 자세를 바꿀 때까지 쥐가 나더라도 꾹 참는 편인데 요즘 자꾸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 움직인다. 옆에 있을 것 이라는 걸 알면서도 무의...
며칠 뒤 태형이 찾아왔다. 그 날 저녁 지민이 좋아하는 떡볶이집의 메뉴를 포장해 온 윤기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뻔히 알았지만 아침처럼 함께 식탁에 마주 앉지 않았다. 그 반응에 당황한 윤기의 발자국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도 꾹 참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못났어 박지민 개못났어 진짜. 이후 혼자만 삐걱대는 냉전 중이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무표정한 ...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